그를 좋아한다는 걸 알게 된건 연구개발부서에 들어오고 나서 몇주가 지난 후였다.
"이건 이렇게.. 듣고 있는거냐?"
"네? 아.."
"중요한걸 말하고 있는데 정신이 빠져있으면 어떻게해."
"죄송합니다."
매뉴얼. 그는 내 직속사수였다. 하지만 나는 이곳에 들어오기 전부터 이미 그를 알고 있었다. 크레인 삼촌의 부탁으로 수호대에 스파이로 잠복해 있었던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때 감시했던 사람이 바로 지금 내 직속 사수 매뉴얼이였다. 그 때의 그는 참 올곧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꽤 친절하다고도 생각했다. 그런데 직장상사로 만나니 그리 좋게 느껴지지만은 않았다.
"커피좀 사와라."
"네."
카드를 주며 커피 심부름을 시키는 상사의 말에 나는 근처 카페로 향했다. 그러고보니 커피를 몇잔을 사오라고 했더라... 매뉴판을 보며 고민하고 있는데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뭐지하고 뒤돌아보니 매뉴얼 선배가 서있었다.
"!!!"
"깜빡하고 말하지 않은게 있는 것 같아서 말이야."
"..네?"
그는 결국 커피가 다 나올 때까지 옆에 있었다. 주문만 하고 갈줄 알았는데... 연개부원들의 커피까지 다 나오니 커피캐리어를 양손으로 들어야했다. 그 때 매뉴얼 선배가 내 왼쪽에 있는 커피 캐리어를 가져갔다.
"...?"
"이녀석들 지들이 먹을건 지들이 사오지 말이야."
매뉴얼선배는 투덜거리며 걸어갔다. 멍하니 서있던 나는 뒤늦게 그를 뒤따라 갔다. 그 때부터였을까. 그를 좋아하게 된건.
"...."
그치만 그에게 어떻게 좋아하는 마음을 전해야될지 모르겠다. 매뉴얼 선배라면 그냥 장난으로 넘길지도 모른다. 그리고 애초에 나를 이성으로써 생각하지도 않는 것 같고..
"어떡하지.."
"뭘 어떡해요?"
"우악! 컨티뉴선배?"
갑자기 뒤에서 컨티뉴 선배가 튀어나왔다. 공책에 끄적이고 있던 나는 황급히 팔로 공책을 가렸다.
"무슨 고민이라도 있으신건가요?"
"네? 아...그게.."
컨티뉴 선배는 내게 가장 편한 대화 상대였다. 좋아하는건 매뉴얼 선배지만. 좋아하는거랑 편한거랑은 별개니까.. 결국 나는 밤기운에 사실대로 말해버렸다.
"그냥 말하면 되지 않을까요?"
고민하는 듯 하던 컨티뉴 선배는 의외로 정론을 말했다.
"하,하지만...그랬다가 차이면.."
그럼 가슴이 찢어질 것 같이 아플 것 같다. 그를 좋아하는 마음이 너무나도 커서.. 그래서 고백하는 것 마저 이렇게 고민이 된다..
"하지만 빙빙 돌려말하는건 캐리씨 답지 않은걸요."
"저답지 않다니요..?"
"캐리씨는 약간..음..매뉴얼 선배 같다고 할까요."
"그게 뭐에요.."
무슨 말인지 도통 모르겠다. 컨티뉴 선배는 가끔 이렇게 알아듣기 어려운 말을 할 때가 있다.
"직설적인 성격이라고 할까요. 저는 그게 매력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컨티뉴 선배의 말에 그 날 밤 나는 이불을 뒤집어 쓴채 몇번이고 똑같은 말을 되내었다.
좋아해요. 좋아해요. 좋아해요.
다음날 저 앞에 걸어가고 있는 매뉴얼 선배의 뒷모습이 보였다. 뒷모습을 보자마자 나는 큰소리로 말했다.
"좋아해요! 매뉴얼 선배!"
오늘 내 사랑의 첫걸음이 시작되었다.